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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오성기











http://www.astronomer.rocks/news/articleView.html?idxno=81428


2008년 중국 쓰촨성(四川省)에 큰 지진이 일어나 진앙 일대가 쑥대밭이 됐습니다. 미국 NBC는 당시 ‘현지 시각 2008년 5월 12일 14시 28분 중국 내륙에 위치한 원촨 현(汶川县)에서 규모 7.5에서 8.0의 강진이 발생’했으며, ‘24시간 동안 지진 규모 5.0에서 6.0의 여진이 이어졌다’고 전했습니다.



후이량위(回良玉)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피해 복구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 회견에서 7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피해 복구에 약 700억 위안, 한화로 10조5천억 원 가량을 책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세계의 관심이 중국 쓰촨성에 몰렸습니다. 구호 물자가 전달되기도 했고 각국의 지질 관련 전문가들이 중국을 찾아 지진의 원인을 분석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쓰촨 지진이 댐 때문에 발생했다"



미국지질조사국의 당시 쓰촨성 대지진 기록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일부 전문가가 쓰촨성 대지진이 “인간이 만들어낸 비극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했다는 점입니다. 진앙지 근처에 조성된 대형 댐이 지진을 일으켰다는 건데요.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쓰촨성 대지진이 진앙에서 5㎞ 가량 떨어진 쯔핑푸(紫坪浦)댐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는 중국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쓰촨성 두장옌(都江堰)시 민강(岷江) 상류에 위치한 쯔핑푸댐은 수력발전용으로 2007년 완공됐습니다. 높이 155m에 저수량은 3억1500만톤 정도입니다. 저수량은 소양강 댐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단층선에서 불과 500m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안전 논란이 제기돼 왔습니다.



쓰촨성 지질광물국 공학기술자인 판샤오(范曉) 주임은 “쯔핑푸 댐에 담겨 있던 물이 지반을 뚫고 들어가 이 일대의 단층을 끊으면서 지진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습니다.  판 주임은 “이 지역은 이전에 대규모 지각 활동이 보고되지 않았다”며 “연속적인 지각 활동 없이 갑자기 규모 7.9의 강진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쓰촨성 대지진은 매우 특이하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지질학자인 리처드 커(Richard A. Kerr) 박사도 2009년 1월 <사이언스>에 라는 제목의 쯔핑푸 댐과 쓰촨성 대지진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한 논문을 싣기도 했습니다. 쯔핑푸 댐 때문에 지진이 났다는 의혹이 이렇게 학계에서 국제적으로 제기된 겁니다.


싼샤댐, 출처 구글맵스 화면 갈무리
또한 <홍콩신보(信報)>는 2008년 가동을 시작한 싼샤댐을 대지진의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싼샤댐은 높이 189m, 길이 2,300m, 저수량 400억 톤 가량인 세계 최대의 댐입니다.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중국 과학자들의 모임 중국공정원은 지난 2006년 싼샤댐에 물을 채우기 시작한 이래 7개월 동안 822차례에 달하는 진동이 감지됐다고 밝혔습니다.

 

중국공정원은 싼샤댐 기반 암석층이 매우 단단하기는 하지만 이처럼 초대형 댐의 경우, 강력한 수압의 영향으로 암석층이 깨져 댐의 물이 스며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습니다. 과다한 저수량이 댐 바닥에 압력을 가하고 지표층 틈새로 스며든 물이 지각 단층 활동의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지진을 유발하게 된다는 논리였죠.

 



매체에 따르면 대지진의 진앙인 쓰촨성 원촨(汶川)과 싼샤댐이 위치한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은 700㎞ 가량 떨어져 있으며, 과거 쓰촨성에 지진이 발생한 적은 있지만 규모 7.8의 대지진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중국, '섣부른 판단 시기상조'

 

댐이 지진을 촉발시켰다는 의혹에 대해 중국 당국은 전면 대응을 한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정부 관계자 일부가 입장을 밝히긴 했습니다. 중국지진센터 지질연구소 가오젠궈(高建國) 연구원은 <대기원시보>와의 인터뷰에서 "진앙지 원촨은 남북 지진대상에 위치한 지진 다발 지역에 속한다"며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 싼샤댐이 현지 지질구조에 영향을 줘 지진을 유발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중국지진국의 관리 레이 행림은 <텔레그래프> 인터뷰에서 “지진과 댐의 상관 관계에 대해 보다 면밀히 알아봐야 한다”며 “섣불리 지진의 원인을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에도 아직까지 의혹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USGS의 쓰촨성 대지진에 관한 보고서의 이미지
한편, 미국지질관리국(USGS)은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쓰촨성)지진의 원인은 지각 변동에 있다"며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이 충돌하며 지진을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습니다. 쓰촨성에 룽멘샨 단층(Longmenshan fault)이 지나고 있으며, 인도판이 계속 북쪽으로 움직이며 유라시아판과 충돌하면 이 여파로 지진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해 중국 정부의 해명이 대신 이루어진 측면도 있습니다.

 

미국에선 댐이 지진 일으킨 적 있다


후버댐, 출처 Pamela McCreight, Florida, USA
미국 콜롬비아대 러먼트-도허티 지질관측소의 크리스천 클로제 박사는 2008년 6월 미국 월간지 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인간의 활동이 천재지변과 같은 큰 사건에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하지 못한다"며 “거대한 댐에 물이 가득 찬다면 지각에 과한 압력을 가해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클로제 박사는 미국 후버 댐(Hoover Dam) 주변에 일어난 수백 건의 지진을 예로 들었습니다. 후버 댐은 미국 네바다 주와 애리조나 주 경계에 있는 높이 221m, 길이 411m의 댐입니다. 길이 185km의 인공 호수 미드 호(Lake Mead)가 후버댐으로 인해 만들어졌죠.

 

박사는 1939년 후버 댐의 수위가 145m에 달했을 때 댐 자체에는 이상이 없었지만 주변 지역에 규모 5의 지진이 발생했다며, 중국 쓰촨성 대지진에도 주변의 쯔핑푸(紫坪浦)댐이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덧붙여 클로제 박사는 “일시에 많은 양의 물이 들어차면 자연적인 지각운동에 비해 단층에 가해지는 압력이 25배 이상 높아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이웃집과학자(http://www.astronomer.ro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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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연합뉴스) 류성무 특파원 = 중국 쓰촨(四川)성 루산(蘆山)현에서 발생한 규모 7.0 지진을 계기로 창장(長江·양쯔강) 중류에 건설된 싼샤(三峽)댐 문제가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徽博)에는 20일 루산현 강진이 일어난 이후 쌴샤댐과 이 지진의 관련성을 거론하는 글이 잇따라 오르고 있다고 대만 연합보 인터넷망이 22일 전했다.
5년 전 쓰촨성 원촨(汶川) 대지진 때 일어났던 논란의 재판인 셈이다. 당시 중화권 매체들은 세계 최대 규모의 댐인 싼샤댐에 저장된 물이 강한 압력으로 지반 변화를 유발해 인근 지역에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비중 있게 다뤘다.
지표 틈새로 스며든 물이 지각 단층 활동의 윤활유 역할을 하면서 지진을 유발한다는 주장이다.
웨이보 '논객'들도 이런 전문가 의견을 근거로 이번 지진과 쌴샤댐을 연결짓고 있다.
야안(雅安)시 루산현이 쌴샤댐이 있는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과는 불과 200여 ㎞ 거리에 있는 점도 이 논란이 다시 일어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논란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자 중국지진센터(CENC) 등은 쌴샤댐 연관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일축했다.
중국지진센터 쑨스훙(孫士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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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정부는 싼샤댐 건설로 인한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완벽에 가까운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측 발표와는 약간 차이가 있다. 우선 수위상승으로 인한 지반침하가 직접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7월13일 새벽 펑졔와 펑두에서 지반침하로 인한 산사태로 12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지반침하는 물 밑과 물 위에서 모두 진행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펑졔 신도시 일부의 축대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것이다. 수위가 상승하면 도시 전체가 산사태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아 보였다. 

필자는 수위 110m의 상태에서 펑졔와 펑두를 방문했을 때, 임시로 마련된 간이 정박지의 제방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이런 현상이 대규모로 벌어질 경우 완저우, 펑졔, 우산, 파둥, 즈구이의 신도시들은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우려는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7월13일 싼샤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즈구이현 사전시(沙鎭溪)진에서 대형 산사태가 발생해 5명이 죽고, 19명이 실종됐다. 이번에 유실된 지역은 길이 1200m, 넓이 1000m에 이른다. 이곳은 싼샤와 3km 정도 떨어진 지역으로, 싼샤댐이 저수 지점에서 한참 떨어진 지반에도 치명적 영향을 주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댐 접경 시가지들의 위험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대다수 신도시들은 수몰 전 지점보다 고도가 200m 높은 지점에 건설되었다. 그런데 이들 신도시들은 모두 지반보강작업도 없이 산을 깎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산들은 경사가 보통 45도 이상으로 가파르다. 싼샤 주변 신도시들은 산사태와 지반침하라는 이중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강주변 지역의 유실로 인한 강바닥의 상승은 더 큰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황토를 머금은 창강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 저수상태가 되어 황토가 바닥에 가라앉는 문제도 있다. 그러나 싼샤댐의 시공자인 싼샤총공사(三峽總公司)는 이 문제를 그다지 심각하게 보지 않고 있다.


총공사 자료에 따르면 싼샤의 평균 유량은 4510억m3인데, 평균 모래 유입량은 5억2100만t이다. 따라서 모래나 진흙이 쌓이는 것은 자명한 이치인데, 총공사측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축청배혼(蓄淸排渾)’의 방법을 쓴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싼샤댐 하류의 물이 전체적으로 줄어 홍수의 위험이 없을 때, 댐에 물을 가득 채운 후 한꺼번에 방류해 수면 아래의 진흙도 물에 휩쓸려 보내는 방법이다. 이 방식은 지난해 진흙이 쌓여 강의 기능이 현저히 떨어진 황허에서 사용되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실제적 효과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더구나 황허보다 유역이 훨씬 넓고 총길이 662km에 달하는 거대한 저수지인 창강에서도 이 방식이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것이다. 만약 이 방식의 실효성이 떨어져 강바닥이 높아질 경우 싼샤댐의 기능은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홍수조절 기능 저하는 물론이고 수력 발전 등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펑졔에서 하류로 약간 내려오면 강의 왼편에 우뚝 솟은 바이티청(白帝城)이 있다. 바이티청은 싼샤의 첫머리인 취탕샤(瞿塘峽)의 시작이다. 바이티청은 산위에 세워진 자색(紫色) 건물군을 일컫는데, 그 기원은 서한(西漢) 말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싼샤댐에 물 채우기를 시작한 이후 강 주변 지역에 연무(煙霧)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이 채워지고 난 후 싼샤를 방문했을 때 그 전에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안개가 잔뜩 끼여 있었다. 이 안개는 이창에서 충칭에 이르는 전지역을 뒤덮었다. 안내하던 중국 친구에게 물어보았더니 자신도 이런 긴 안개는 처음이라며 당혹해했다. 중국정부는 싼샤댐이 생기면 더 많은 볼거리가 생긴다고 했지만 안개로 인해 경관이 훨씬 못해졌다는 말에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안개로 인한 선박 전복사고도 잇따랐다. 지난 6월19일 펑두 부근 푸링(?陵)에서는 짙은 안개로 인해 여객선이 전복되는사고가 일어났다. 7월12일에도 배가 침몰했다. 7월14일에도 펑두에서 여객선이 전복됐다. 강폭이 넓어지는 등 배 운항 환경은 좋아졌지만, 안개 때문에 발생한 사고들이다.

이에 충칭시는 기상관측기구인 ‘천리안’을 올해 안에 설치키로 하는 등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고를 줄이는 방법일 뿐 싼샤 주변의 안개를 제거하는 뾰족한 방안은 찾지 못하고 있다. 지독한 안개는 예상치 못한 자연의 복수인지도 모른다. 결국 여행자들이 싼샤를 선택할 이유가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중국 언론들은 싼샤댐 건설 이후 경관이 여전하고, 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보도한다. 그러나 필자는 현장 답사 결과 그 의견에 동의할 수 없게 됐다. 여름이면 충칭, 우한, 난징은 ‘중국 3대 찜통’으로 바뀐다. 창강은 이들 3도시를 관통한다. 시내는 물론이고 강변 지역도 기온이 급상승하는 창강이 호수로 바뀐다면 날씨는 더욱 더워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싼샤 주변의 경우 취탕샤는 물론이고 대부분 지역이 늘 짙은 안개에 덮여 있어 사진 촬영 자체가 쉽지 않았다. 거대한 협곡이 매력인 싼샤가 안개로 덮여있다면 의미가 없다. 상당수 문화재들은 물 속으로 사라졌다. 나머지 문화재도 복제되거나 인공적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전과 같은 감흥을 줄 수는 없게 된 것이다.


물막이 후 강수량 급증, 홍수 빈발

싼샤댐 아래쪽에는 신도시가 완비되어 있다. 싼샤댐은 중국이 최근 가장 역점을 둔 대공사인 만큼 철저한 보안과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2009년 완공 때까지 투자비용은 2000억위안(약 30조원)으로, 그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필자가 이곳에 들렀을 때는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막바지였다. 싼샤지역 특별병원에서 혈액검사, X-레이, 의사 문진 등을 거친 후에야 진입이 허용됐다. 필자는 댐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었지만 댐 측면에 있는 바이허량(白鶴梁)이나 전망대에서 싼샤댐을 볼 수 있었다.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싼샤댐은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에서부터 전력부문, 댐 조절 부분, 갑문 시설로 나누어져 있다. 수력발전 부분의 경우 26대의 수력발전기가 건설되는데, 그중에 올해까지 2기가 정상가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5단계로 된 2개의 갑문시설은 길이 280m, 넓이 34m, 최소수심 5m로 1만t급 배를 움직일 수 있다.


이 댐을 건설한 가장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홍수 방지다. 그러나 이 댐이 2500년 전 전설 속의 인물인 우왕의 치수에 버금가는 성공적 치수책이 될 것인가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 댐이 있는 싼더우핑 아래에는 황링먀오가 있다. 치수의 제왕 우왕을 기념하는 곳이다. 

우왕의 치수 철학은 물을 트는 것이었다. 우왕에 앞서 물을 막는 방식으로 치수를 시도하던 곤은 물이 터지는 바람에 큰 피해를 입고 죽임을 당했다. 이를 교훈 삼아 우왕은 물을 트는 방식으로 치수를 했던 것이다. 우왕뿐만 아니라 중국 문화학자 위치우위(余秋雨)가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문화유산이라고 평한 쓰촨 두쟝옌(都江堰) 등 중국의 전통적 치수책은 물을 트는 방식이었다.

싼샤댐은 물을 막는 방식의 치수다. 창강의 중하류에는 지금 3억 이상의 인구가 살고 있다. 만에 하나 싼샤댐이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도 중국이 싼샤댐을 강력하게 추진한 것은 별다른 홍수방지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천 km에 이르는 창강의 강바닥을 판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댐을 통한 치수를 구상하게 된 것이다. 393억m3에 달하는 저수량을 가지며, 홍수방지를 위해 221억5000m3를 가둘 수 있는 싼샤댐이 완공되면 창강의 홍수를 막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 홍수가 사라질 것이라는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세계 최대의 댐이라는 싼샤댐도 창강의 치수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싼샤댐을 지난 물은 후난(湖南)과 후베이(湖北)의 중류에 형성된 거대한 호수군에 흘러든다. 

올해부터 홍수가 없을 거라는 중국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싼샤댐의 존재를 비웃듯 올해 중국 홍수는 심각했다. 6월초 후난성의 남부인 샹강(湘江)에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수십명이 사망했다. 이 지역에 싼샤댐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샹강은 둥팅호로 흘러드는 지류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6월 말부터 창강과 황허의 중부에 쏟아진 비로 한 달 가량 홍수 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두 강의 중류에는 화이허(淮河)가 있는데, 올 여름 홍수의 가장 큰 피해지역이 됐다. 필자는 7월초 홍수 상황을 보기 위해 안후이성 벙부(蚌埠)를 방문했다. 한 차례 홍수가 지나간 도시엔 침수돼 온통 흙탕물을 뒤집어쓴 지역이 남아 있었고, 평지보다 수 미터나 높은 제방 위를 넘실대며 흐르는 강물은 일촉측발의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7월 중순에는 창강의 중상류 쪽에 폭우가 쏟아졌다. 쓰촨, 청두는 물론이고 충칭에서 싼샤에 이르는 지역도 물난리를 겪었다. 물론 이미 물을 채워 홍수 조절 기능을 한 싼샤댐으로 인해 피해가 줄어든 측면도 있겠지만, 올 여름 홍수는 싼샤댐이 완성된다고 하더라도 중국이 홍수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하리라는 전망을 낳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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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중국 쓰촨성 대지진 발생보다 40여 일 앞선
지난 3월 세계 최대 규모인 싼샤(三峽)댐이 지진 등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예언’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잡지의 인터넷 판에는 [싼샤댐이 인근 지역에 지진 같은 재앙을 불러올 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경고 기사가 실렸다.
인공 구조물인 댐과 댐 내부에 담긴 물의 무게로 그 지역 지반이 막대한 하중을 받게 되고,
이 부담으로 인해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 재해가 더 자주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1968년 미국 최대 규모의 사력댐인 캘리포니아 오로빌댐에 물이 찬 뒤
이 지역은 10년여에 걸쳐 10차례가 넘는 지진을 경험했다고 잡지는 전했다.

오로빌댐뿐 아니라 1962년 완공된 중국 광둥성 신펑장(新豊江)댐 인근 지역도 규모 5~6.2의 지진을 19차례나 겪었다.
잡지는[비록 어느 댐이 지진을 유발하는지 정확하지는 못하지만 세계 70여 개의 댐이 지진과 연관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싼샤댐이 자연재해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지적은 중국 내부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중국 과학자들의 모임인 중국 공정원의 리왕펑은
[2006년 댐에 물을 채우기 시작한 이래 7개월 동안 822차례에 달하는 크고 작은 진동이 감지됐다]며
[댐이 완공되는 2009년에는 지진 위험이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부 지구물리학자들은 댐 자체의 무게는 물론 댐에 저장된 물의 하중이 지구 자전속도와 지구 자전축의 경사,
중력장 모양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해 11월 [싼샤댐 부근은 원래 지리적으로 취약한 지대라 지진의 위험이 있으며
저수지 바닥에 토사가 계속 유입되고 있어 발전에도 영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만리장성 이래 최대 역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댐의 규모는 엄청나다.
댐이 완공되고 난 후 생긴 저수지의 길이는 북미 오대호 중 하나인 슈피리어호 보다 더 큰 660㎞(폭 1.12㎞)에 이른다.
댐 건설로 인해 이주민 120만 명 발생,생태계 파괴, 전염병 창궐 등의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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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된 물 압력에 지반 변화” 중국판 트위터에 글 잇따라
중국 쓰촨성 야안시 루산(山)현에서 발생한 규모 7.0의 강진과 창장(長江) 중류에 건설된 세계 최대 규모 싼샤(三峽)댐과의 연관성이 제기되고 있다. 후베이(湖北)성 이창(宜昌)시의 싼샤댐과 지진 발생지가 비교적 근접해 있는 탓이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徽博)에는 지난 20일 강진 발생 이후 싼샤댐과의 연관성을 거론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앞서 5년 전인 2008년 5월 8만 6000여명의 희생자를 낸 쓰촨대지진 때도 같은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워낙 큰 규모의 지진이어서 원인 등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고, 그 가운데 하나가 ‘싼샤댐 유발론’이다. 싼샤댐에 저장된 물이 강한 압력으로 지반 변화를 일으켜 지진을 유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 의견도 소개됐다. 지표 틈새로 스며든 물이 지각의 단층 활동을 활성화하면서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웨이보 ‘논객’들도 이를 근거로 이번 강진과 싼샤댐을 연결짓고 있다. 


그러나 당국은 일축했다. 중국지진센터 쑨스훙(孫士鋐) 선임연구원은 “루산현 지진과 싼샤댐은 무관하다”면서 “댐에 의해서 발생하는 지진은 통상적으로 진원이 3∼5㎞ 깊이에서 일어나지만, 이번 지진은 진원의 깊이가 13㎞인 점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저수량 때문에 발생하는 지진은 일반적으로 활성단층대에서 나타나지 않고, 지진 규모도 비교적 작다”고 덧붙였다. 최대 저수량이 소양강댐의 13배인 390억t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싼샤댐은 12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지난해 최종 완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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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지진 왜

2008년 8만 6000여명이 희생된 규모 8.0의 쓰촨(四川) 대지진이 일어난 지 5년 만에 또다시 강진이 발생해 쓰촨성 일대에 지진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20일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한 쓰촨성 야안(雅安)시 루산(山)현은 쓰촨 대지진 진앙지인 원촨(汶川)현과는 200여㎞ 떨어진 지점이다. 연관성이 주목되는 이유다.

중국지진센터(CENC)는 이번 지진의 발생 원인에 대해 쓰촨성을 가로지르는 룽먼(龍門)산 단층이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유라시아판에 속한 티베트 칭짱(靑藏)고원 지대의 지각이 쓰촨 분지를 밀어붙이면서 룽먼산 단층의 활동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쓰촨 대지진은 룽먼산 단층의 중·북단에서, 이번 지진은 단층 남단에서 일어났다. 

루산 지진이 쓰촨 대지진의 여진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중국과학원의 천윈타이(陳運泰) 원사는 21일 쓰촨 대지진 당시 여진이 서남쪽으로 이동했다는 점을 들어 “루산 지진은 쓰촨 대지진 이후 최대의 여진”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중국 지진국은 “쓰촨 대지진의 여진이 아닌 개별적인 지진”이라며 이 같은 분석을 일축했다. 

한편 규모는 1.0 차이에 불과하지만 이번 지진 피해가 5년 전보다 작았던 것은 지진의 절대 강도가 32분의1에 불과한 데다 잇따른 대지진 ‘학습 효과’로 당국과 주민들의 대응이 비교적 신속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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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촨성 야안시에서 20일(현지시간) 발생한 규모 7.0 강진은 쓰촨성을 가로지르는 룽먼산 단층이 움직였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지진센터(CENC)는 이번 지진이 룽먼산 단층 남단에서 일어났다면서 21일 이같이 밝혔다.

룽먼산 단층은 쓰촨성을 북동-남서 방향으로 관통하는 길이 500여 ㎞의 활성단층이다. 이 단층은 쓰촨분지와 칭창고원 사이에 있고 폭이 70여 ㎞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8년 8만6000여 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규모 8.0의 쓰촨성 원촨 대지진도 이 지진대의 중북부에서 일어났다. 유라시아판에 속한 티베트고원 지대의 지각이 쓰촨분지를 밀어붙이면서 룽먼산 단층의 활동을 잇달아 촉발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미국 지진학자들은 5년 전 원촨 대지진 당시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번 쓰촨 강진의 진앙 부근에서 최근 40년 사이 모두 4차례 규모 6.0 이상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이번 지진이 원촨 대지진의 여진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쓰촨성 지진연구원은 "이번 야안시 지진이 원촨 대지진의 여진 범위 밖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원촨 대지진의 여진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지질조사국은 "지진이 남북으로 뻗은 룽먼산 단층대에서 동서 방향의 지각운동으로 조성된 것이기 때문에 원촨 대지진의 여진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타이베이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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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루대단층









1976년 7월 28일 3시 42분에 중국 허베이성 탕산시에서 일어난 대지진이다. 다른 말로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해」라고도 불리운다. 리히터 규모는 7.8. 

2. 상세[편집]

공식적인 사상자 집계수는 사망자 242,400명, 중상자 164,000명, 불구 3,800명으로 중국 공산당에서 발표한 내용이지만, 그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은 문화대혁명 기간으로서 외국인들의 구호 원조를 거부하였다. 촬영하는 외국인 기자를 쥐도새도 모르게 납치해서 공항에서 풀어준다거나, 사복으로 위장한 치안요원들이 돌을 던져 내쫓는 행위까지 일어났늘 정도. 그래서 일부 사진을 제외한 당시의 사고지역 사진을 찾기가 상당히 힘들다. 남아 있는 사진은 피해지역의 일부만 찍혀있는데, 정작 심각한 피해를 입은 지역을 촬영한 사진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이후 여러차례 탕산대지진에 대한 기념사업이 벌어지면서 중국 공산당이 현장 사진을 공개하긴 했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한다.

실제 추산 사상자는 70만명 이상, 사망자만 약 50만명으로 추산된다.[2] 이렇게 피해가 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애초에 탕산이란 도시가 판과 판 사이에 놓인(...) 도시였고, 지반에 생긴 공동으로 지표면이 내려앉는 형태의 직하형 지진이었기에, 도시가 단 한순간에 가라앉았다는 표현을 써도 상관없을 정도였고, 또 인구 100만을 넘는 상당한 규모의 도시였던 관계로 지진 피해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일대가 충적평야여서 액상화[3]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했는데, 당시 탕산 시에 있던 건물들은 대부분 아래 기반암에 뿌리를 박지 않고 지어졌다. 당연히 건물이 버틸 수가 없었다. 실제 지진의 지속 시간은 그리 긴 편이 아니었다고 하며,[4] 여진은 실제 지진에 비하면 별로 없는 편이었다.[5] 지반에 단층이 발생해 지반 속에 공동이 발생하고 그 사이로 광범위한 지반이 가라앉은 형태의 지진이었기 때문.

쓰촨성 대지진과는 다른 형태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탕산은 서로는 베이징, 남으로는 톈진이라는 대도시를 끼고 있었으며, 중국에서 당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었던 데다가, 공업도시로 공장들이 많이 세워져 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과 인천 사이쯤에 존재하는 부천 같은 위치. 그렇지만 여진이 크지 않았고, 지진의 범위가 좁은 직하형 지진이다 보니, 불행중 다행으로 탕산 이외의 지역은 생각외로 지진 피해가 적었다고 한다. 탕산 이외의 사상자는 70만명중 8만명 내외로 집계된 것.

중국이 군 병력을 10만명이나 투입했는데도 복구에만 10년이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광범위한 지역이 수미터 아래로 푹 내려앉은 상황인데다 주변에 그나마 내려앉지 않은 지역도 피해가 심각했고, 그걸 메우고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작업이 필요했고, 피해가 너무 막심하다보니 그냥 메울 수도 없었기 때문. 실종자 수색에만 총 복구기간 10년중 6년 가량을 투자했을 것이라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당시 처치곤란이던 홍위병들도 이곳에 대거 투입했다고. 그나마 매장작업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서 전염병 발생이 이루어지지 않은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다만 신원확인이 확실히 진행된채로 매장이 이루어진 경우는 적었기 때문에 종종 이산가족이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탕산이 광공업도시인 것도 피해 확대에 한몫을 했다. 그 당시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갱도에 매몰된 사람만 수천 명이 넘어서, 매몰자들을 찾아내는 데만 해도 상당한 기간이 걸렸다. 이후 광공업도시였던 탕산은 구호 공산품 생산 도시로 경제구조 개편이 이루어졌다.[6] 탕산의 복구를 위해 이주권고를 통한 이주로 탕산의 인구를 채우기도 했다고 한다. 1986년에 30M 높이의 항진기념비와 항진기념관이 세워졌으며 항진기념관에서 탕산대지진에 대한 자료와 복구 과정을 그린 자료들이 전시되어있다.[7]그렇지만 중국도 경제개발과 세수확충을 이유로 부동산 개발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강했고 기념비 근처 지역에 고도제한이 설정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탕산항진기념비 옆에 고층건물들이 우후죽순 세워져있어서 추모의 의의가 희석된다라는 의견도 많다.

당시 중국 정부에서 탕산대지진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자력갱생 노선을 내세워서 외국의 지원을 거부했는데 오히려 장비부족 문제로 효율적인 구조에 어려움을 겪으며[8] 피해를 키웠고 그 이후로 중국 정부에서 교훈을 얻어서 쓰촨성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는 외국의 원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사건 34주년이던 2010년 7월 28일 해당 사건을 극화한 펑 샤오강 감독의 재난 영화 <탕산대지진>이 개봉되었으며 한국에는 2010년 11월 4일 CJ엔터테인먼트가 <대지진>으로 이름을 바꿔 수입, 필라멘트픽쳐스를 통해 개봉하였다. 맨 위의 영상도 이 영화의 지진 장면. 이 영화는 당시 중국에서 최대의 흥행을 기록했다는데, 인민해방군을 너무 띄워준다거나 하는 등
정권 후빨 정권의 프로파간다에 영합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를테면 중국 공산당의 통제로 제대로 개봉도 못 한 <얀마이>라든지하지만 탕산대지진으로 헤어진 가족이 쓰촨성 대지진을 계기로 다시 만나게 되는 과정을 눈물나게 그려났기 때문에 탕산 대지진 유족들도 탕산대지진 당시를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며 봤다라는 후문이었다고.
한국으로 치면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급이라고 해야할까나

지진 당시 목숨을 구한 이들의 수기가 담겨진 책자가 오래전에 번역되어 나온 바 있는데, 어느 생존자가 발을 씻은 물을 버리려고 하다가 지진이 나서 집이 무너지는 통에 갇혀서 보름 이상을 견뎌 살았는데 그 버리려는 발 씻은 물을 마셔가면서 견뎠다고 한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지진이 느껴졌다고 하지만, 지속시간이 길지 않았고, 직하형이라 범위가 좁았던데다 새벽시간이었던지라 직접적으로 지진을 느낀 사람들은 적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 일어나는 대지진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은 만큼 그로부터 2년뒤인 1978년에 9월 16일에는 규모 5.2의 속리산 지진이, 10월 7일에는 규모 5.0의 홍성 지진이 일어났다.

흥미롭게도 약 40여년 뒤 포항 지진과 많은 부분이 흡사해 비교되기도 했다. (직하형 지진으로 인한 큰 피해, 액상화 현상 발생)

이 대지진을 겪은 다음 고베 대지진을 겪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흠좀무)

3. 비화[편집]

사실 이 지진은 발생 몇 주 전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중국 국가지진국의 전문가 양유천을 비롯한 몇몇 전문가들이 '가까운 시일 내에 탕산 근처에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라는 경고를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것.[9] 그런데 당시가 하필 저우언라이와 마오쩌둥의 사망을 전후한 문화대혁명 말의 격변기였던지라 이들의 경고는 민심 동요를 이유로 묵살당했고,[10] 최초 발언자인 양유천은 사상교육을 받으러 끌려가기까지 했다(...). 그들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은 이웃 친황다오 시 칭룽(靑龍) 만족 자치현의 공무원들뿐이었고, 이들은 짧은 기간이나마 지진 대응요령 교육이나 건물 안전점검 등의 사전조치를 충실히 취한 결과 수십 만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와중에 칭룽 현에서는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의 실책을 감추려는 목적으로 자신들의 업적에 대해 단 한 마디 언급도 할 수 없었다고... 그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4인방이 언론 등을 장악하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지진발생 21시간 뒤에나 언론을 통해 사건에 대한 보도가 시작되었기에 그 만큼 신속한 대응이 어려워졌고 민간적인 차원에서 전국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한건 그 이후였기 때문에 피해를 크게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2005년, 장칭저우라는 사람이 양유천과 칭룽 현 관계자 등 지진 관련자들의 증언을 모아 <탕산경세록>이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 정부에 의해
재빨리 금서로 지정됐고, 결국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잊혀지고 말았다(...). 후에 이 책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영화 <얀마이>가 만들어졌지만, 이 영화 역시...

당시 덩샤오핑 축출에 열을 올리고 있던 사인방의 리더 장칭은 "탕산에서는 겨우 수십만 명이 죽었을 뿐이지만 덩샤오핑 탄핵은 8억 인민 전체의 문제다"라는 희대의 개소리를 시전하기도 했다나.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20세기에 발생한 지진
20세기
발생 날짜
해당 지진
1906. 4. 18
M8.3
1909. 6. 11
M6.2
1920. 12. 16
M7.8~8.6
1923. 9. 1
M7.9
1932. 7. 4
M5.1
1944. 12. 7
M7.9?
1948. 6. 28
M7.1
1950. 8. 15
M8.6
1952. 11. 5
M9.0
1959. 5. 4
M8.0
1960. 5. 2
M9.5
1964. 3. 27
M9.2
1965. 8. 3 ~1970. 6. 5
M6.4
1976. 7. 28
M7.8
1978. 9. 16
M5.2
1978. 10. 7
M5.0
1980. 1. 8
M5.3
1983. 5. 26
M7.7
1985. 9. 19
M8.0
1988. 12. 7
M7.0
1989. 10. 17
M6.9
1990. 6. 21
M7.7
1995. 1. 17
M7.2
1999. 9. 21
M7.7
[1] 영화 대지진의 한 장면이다.[2] 처음에 허베이 성 혁명위원회는 사망자 65만 5천명으로 발표를 했다고 한다.[3] 토양이 마치 진한 액체와 같은 상태가 되는 현상.[4] 대략 20~30초 내외였다고.[5] 다만 첫 지진 발생 16시간 쯤 뒤에 거의 비슷한 규모의 여진이 한 번 더 발생했다고 한다.[6] 지금도 광산업이나 여기서의 생산물을 소재로 한 제철업 등의 산업이 계속 돌아가고는 있다.[7] 다만 복구과정을 집중적으로 홍보하다보니 생각보다 볼만한 전시물이 적다라는 평이 있다.[8] 아닌 게 아니라 인민해방군이 한창 구조작업을 벌였을때 최신 장비가 부족하다보니 맨손이나 삽 같은 기초적인 장비로잔해를 치우며 구조를 하는 판이었다.[9] 우물물이 요동친다거나, 가스가 올라와서 '지진광'을 볼 수 있었다거나 하는 전조현상들이 관측되고 있었다.[10] 아무래도 탕산이 베이징에서 가까이 있다는 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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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극비 핵시설 '지하 장성' 공개…'10분 내 반격' 능력 과시
입력2017.05.22 11:14 수정2017.05.22 11:14


한반도 정세 격화 속 미국 견제 의도 담긴 듯

중국이 돌연 극비리에 운영되던 지하 핵무기 시설 일부를 공개하며 자국의 핵반격 능력을 과시하고 나섰다.


중국중앙(CC)TV의 인터넷판 앙시(央視)망은 22일 중국군 로켓군부대가 숭산(崇山) 지하의 발사고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홍콩 명보는 이 지하 진지가 핵 공격과 방어, 무기저장, 지휘, 생활 등을 할 수 있게 꾸며져 있다며 핵공격을 받은 뒤 10분 안에 반격을 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한반도 정세가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국은 '장성(長城)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타이항(太行)산맥 지하에 연장거리 5천㎞에 이르는 미사일 기지를 두고 중요 전략핵무기를 보관한 채 핵반격 능력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에서 모든 작전이 가능해 기지의 한 발사구가 공격을 받더라도 그물망 같은 지하 도로와 철도를 통해 다른 발사구로 이동한 다음 실전 준비태세에 돌입하게 된다.

특히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수백 개의 지하 발사구로 인해 미국의 첩보위성도 정확한 목표를 특정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은 이 지하기지에 주둔한 로켓군 여단부대가 중국군의 첫 전략미사일부대로 '둥펑(東風) 제1여단'으로 불리며 창설 58년간 주목을 받을 만한 여러 최초 사례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의 전략미사일 부대로 다차원적인 핵반격 능력을 갖추고 영토를 지키겠다는 결의를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은 핵 위협 및 공격 능력은 최소한으로 보유하되 1차 핵공격을 견딘 다음 상대에게 감당키 힘든 핵반격을 가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중국은 핵무기 보유 첫날 성명에서 "어떤 때나, 어떤 상황에서도 먼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2차 타격, 즉 핵보복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장성 공정'을 추진해왔다.

중국이 핵공격을 받더라도 생존해 핵보복을 수행할 능력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이 부대의 한 사병은 "'지하 장성'에 들어가는 것은 곧 전장에 투입돼 실전용 밀폐생존 훈련을 치른다는 의미"라며 "최근 근무와 생활 모두를 전투력과 연계하는 한 달간의 지하 밀폐훈련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속적인 미사일 발사 시험과 함께 발사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훈련, 적시적소에 작전임무를 확보하는 과제를 수행했다고 덧붙였다.

CCTV는 방송 말미에 다탄두 ICBM인 둥펑(東風)-5B를 비췄다.

이 미사일은 각기 유도되는 3개 이상의 핵탄두를 장착함으로써 상대의 방공망을 돌파할 수 있고 사정거리도 미국 본토는 물론 전 세계 어디라도 타격이 가능하다.


아울러 적이 1차 공격을 시작했으나 아직 타격을 입기 전에 바로 반격을 가할 수 있을 정도로 신속한 대응 공격이 가능한 중요 전략무기라고 방송은 소개했다.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jooho@yna.co.kr


https://youtu.be/Ux8b8TKiw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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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인문지리와 자연지리를 종합해서 윈난성 텅충(腾冲)과 헤이룽장성 헤어허(黑河)를 연결하는 선을 그리기도 합니다.
이 선은, 1935년 중국의 지리학자 후환융(胡焕庸)이 처음 제기한 것입니다.

서북은 인구의 절대수가 적고 인구밀도가 낮은 건조한 지역으로 서역과 북방 유목민 등의 강역이고,
동남은 인구가 많고 밀도도 높은 한족 중심의 농경문화가 발달해온 지역입니다.
인구밀도 위에 표시하면~



이것을 단순한 지도 위에 표시한 다음에~ .......


재미있는 것은 중원의 농경문화가 서북으로 뻗을 때에는 간쑤성(위 지도에서 초록색)을 통해 파고들어갔습니다.
대표적으로 한무제 때의 장건이 서역사행을 간 것이 그랬고,
그 이후에도 중원을 장악한 세력이 서북으로 뻗을 때에는 항상 이 간쑤성의 하서주랑(河西走廊)을 이용합니다. 

반대로, 서북에서 중원으로 치고들어갈 때에는 산시성(위 지도에서 적색)을 타고 남하한다는 것이지요.
흉노나 선비 그외의 거란이나 여진 몽골이 모두 유사했습니다. 


실크로드를 답사하는데, 우루무치에서 시안에 이르는 금년의 루트는, 간쑤성의 하서주랑을 중점적으로 찾아보는 게 됩니다.
지난해 가을 탁발선비 역사기행의 경우, 동북쪽에서 사선으로 남하한 다음 
그 이후는 산시성의 북에서 남으로 훑어 내려오면서 다퉁 타이위안, 훠저우, 린펀, 룽먼 등을 거친 것과는 반대 개념인 곳입니다.

실크로드는 단순한 비단 교역의 길이 아니라 
매크로한 관점에서 보면, 역사 주력의 동선이란 성격이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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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참으로 넓은 나라다. 비좁은 한반도, 그 중에서도 남쪽에 몰려 사는 입장에서는 간혹 시샘이 나기도 할 정도다. 그 규모답게 온갖 기후대를 반영한 다양한 암석들이 장엄한 경관을 빚고 있다. 한반도보다도 더 큰 땅덩어리인 신장이나 내몽골 자치구까지 갈 것도 없이, 태산, 황산, 장가계, 계림, 칠채산과 같은 명산들에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대륙의 절경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곳이라면 타이항(太行) 대협곡이다. 면적이 225㎢에 이르러서 ‘동양의 그랜드캐년’이라고도 불린다. 그야말로 ‘대륙의 스케일’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는 압도적인 규모다. 타이항 대협곡은 중국의 동부 저지, 즉 중국순상지(shield)와 서부 산지의 경계부를 이루는 길이 600km의 타이항산맥 남부에 위치한다.(그림 1) 순상지와 만나는 타이항산맥 전면에는 단층이 지나가며 양자 간을 확실하게 구분 짓고 있다(그림 2).



그림 1. 서울과 비슷한 위도에 위치하고 있는 타이항산맥 남단의 타이항 대협곡(지도의 붉은 점). 타이항산맥(Taihang mountains)은 산시성과 허난성, 허베이성을 구분하는 산맥이다. 출처: 구글어스




그림 2. 허난성 린저우의 서부에 위치한 타이항 산맥 전면부의 단층선 모습. 출처: 구글어스


타이항 대협곡은 융기 지형이다. 25억 년 전의 선캄브리아기 변성암으로 구성된 기반암 위에 덮인 8억 년 전의 사암층이 솟아오르면서 깎여나가 깊이 100m가 넘는 대협곡을 만들었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과 다른 점은 협곡 한복판에 콜로라도강과 같은 대하천이 없다는 것. 그 대신 이곳에는 옛 방식을 이어가며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에서는 인적이 없는 황무지인 그랜드캐년과 달리 사람 냄새가 난다. 천계산과 구련산, 그리고 도화곡과 왕상암을 중심으로 타이항 대협곡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자(그림 3).

그림 3. 허난성에 위치한 구련산과 천계산, 도화곡과 왕상암. 출처: Baidu 지도



홍암 대협곡에서 보는 타이항 협곡의 과거사, 천계산과 구련산(허난성 신샹현 후이셴시 소재)



허난성 신샹현 지역 타이항 대협곡의 주인공은 천계산과 구련산이다. 하늘과 땅의 경계(天界山)라는 이름답게 입구에서 바라보는 산 모습부터 범상치 않다. 산을 둘러싼 운해가 내리는 비의 물안개와 함께 사뭇 선계(仙界)의 입구와도 같은 인상을 준다. 지형적으로는 천계산 인근 계곡의 잘 발달된 하안단구가 눈에 띈다. 그만큼 다량의 토사가 쏟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진 1. 천계산 입구(위)에 소개해 놓은 천계산의 명소(아래)





천계산에 오르려면 버스를 타고 길이 1,250m에 이르는 ‘괘벽공로’를 지나야 한다. 절벽 위 곤산 마을에 갇혀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지내던 주민들이 삽과 곡괭이만으로 21년에 절벽을 걸쳐 뚫었다는 길이다. 태항산에 있는 9개의 절벽길 중 가장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사진 2. 천계산의 괘벽공로. 1,250m의 길이를 지역주민들이 삽과 곡괭이만으로 21년에 걸쳐 뚫었다고 한다.(위). 이 길을 낸 13명의 마을 청년들을 동상을 세워 기리고 있다.(아래).
사진 3. 천계산 정상의 노두. 붉은 사암(red sandstone)은 지붕과 벽 등의 건축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아찔한 터널길을 지나 천계산 정상에 이르니 온통 붉은 사암이 반겨준다. 천계산을 일컬어 ‘홍암(紅岩) 대협곡’이라고도 하는데, 바로 이 선명하게 붉은 사암 때문이다. 사암 절벽 곳곳에서는 천계산의 역사가 기록된 단층이 여기저기 보인다. 깎아지른 절벽 위가 과거에는 수심이 얕은 잔잔한 퇴적 환경이었음을 암시하는 연흔(漣痕)과 사층리(斜層理)도 보인다. 진흙과 모래가 뚜렷이 구분된 퇴적층의 두께와 색깔이 각양각색이다. 주차장 한편에서 암석들이 그대로 노출된 지형인 노두(露頭)만 바라보고 있어도 타이항 협곡의 과거사가 눈에 들어온다.


사암 절벽을 뒤로 하고 ‘빵차(面包車)’에 올라탄다. 빵차는 네모진 식빵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반쯤 우스개로 운행 중에 하도 빵빵거려서 빵차로 부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빵차는 곧 속도를 내기 시작하더니 이내 절벽길을 내달린다. 빵차가 향하는 곳은 해발 1,570m 천계산의 산허리 길인 운봉화랑(雲峰畵廊)이다. 구름과 봉우리가 빚어낸 그림이라는 이름답게, 7곳의 뷰포인트에서 수려한 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 그렇게 풍경을 즐기며 도착한 천계산의 백미가 바로 100m가 넘는 수직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기분이 드는 천 길 낭떠러지다. 이렇게 험한 곳을 어떻게 관광지로 개발할 생각을 했을까. 



사진 4. 천계산 운봉화랑의 수직벽

천계산 다음에 들러본 곳은 구련산(九連山)이다. 아홉 개의 산봉우리가 연꽃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구련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는 선지협(仙脂峽) 절벽에 걸린 천호폭포(天壺瀑布)와 도교사원인 서련사(西蓮寺)가 있는 서련촌이다.
천호폭포로 가는 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절벽에서 떨어진 집채만 한 낙석이 즐비하다. 험로를 지나고 빵차에서 내려 다시 200여m를 걸어가면 장대한 천호폭포를 만날 수 있다. 하늘의 주전자라는 이름답게 120m 높이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길이 인상적이다. 천호폭포는 선지협 끝자락에 걸려 있는데 오랜 시간 동안 흐른 물이 폭포 윗부분을 V자 모양으로 깎아냈다. 어느 폭포에서나 볼 수 있는 수식(水蝕)의 모습이지만 선 굵은 물줄기와 겹쳐 유독 힘이 느껴진다.





사진 5. 구련산 천호폭포 하부에 쌓인 낙석들(위)과 낙차 130m의 천호폭포(아래)



선지협을 오르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중국인들은 이런 절경에도 굳이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놓았다. 따지고 보면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라서 우리나라 같았으면 엘리베이터 설치를 두고 말이 많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생뚱맞아 보이는 엘리베이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바로 절벽 위의 서련촌이다. 서련촌의 사람들은 험한 절벽에 막혀 다른 곳으로 갈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소금을 구하려 1년에 고작 한 두 번 아랫마을에 내려오는 것이 전부였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생긴 지금은 마을사람들의 왕래도 편해지고 이전보다 부쩍 활기를 띄었다. 관광객에게는 마뜩찮을 수도 있는 엘리베이터가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선인 셈이다.






사진 6. 선지협과 서련촌을 잇는 엘리베이터(위)와 서련촌 입구의 모습(아래)


서련촌은 상상했던 것보다 크다. 잘 정비된 마을 모습에서 살짝 부촌의 기운마저 느껴질 뿐 아니라, 험한 지형 가운데 자리잡은 마을인데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구련산 아홉 봉우리의 기가 모인다는 곳에 있는 서련사 때문이다. 서련사 중정에 깔린 정사각형 돌은 이곳이 중국의 사찰이구나 하고 깨닫게 해주는 독특한 모습이다.

모래의 비밀, 도화곡과 왕상암(허난성 안양현 린저우시 소재)
천계산과 구련산을 뒤로 하고 북쪽으로 달리면 도화곡(桃花谷)과 왕상암(王相岩)에 이른다. 이곳은 ‘린저우타이항대협곡’이라고 불리는 곳에 위치한다. 엄동설한에도 복숭아 꽃이 피는 계곡이란 뜻을 지닌 도화곡은 2.5km 길이의 계곡 트래킹 코스다. 접근성이 좋고 걷기 편해 태항산 일대의 계곡 중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명성대로 경사가 완만해서 산책하기에는 딱 알맞다.




사진 7. 사암에 새겨진 ‘중국임주태항대협곡’이란 붉은 글씨가 인상적이다.



도화곡 주변에서는 두께 2cm 정도의 수평 퇴적층을 사이에 두고 위아래로 사층리가 새겨진 절벽면을 볼 수 있다(사진 8). 층리면과 비스듬하게 지층이 나타나는 지형으로, 과거에 제법 강한 물의 흐름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사층리를 이루고 있는 모래가 제법 곱다. 이런 곳을 보면 지질학자로서는 궁금증이 들기 마련이다. 모래들은 어디서 왔을까? 어떤 물의 흐름이 모래를 움직이게 했을까?



사진 8. 도화곡 비룡협의 사암층. 오른쪽 사진에서 호층을 이루고 있는 사층리를 볼 수 있다.
도화곡을 거슬러 올라 마을 입구에서 빵차를 타고 왕상암으로 향한다. 협곡 모양을 따라 굽이치며 왕상암으로 이어진 굽이굽이 절벽길인 환산선의 굴곡이 대단하다. 멀리 보이는 절벽 위로는 고산지대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가옥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 척박해 보이기만 한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살 길을 찾아냈다. 고산지대의 주민들은 사암을 잘게 잘라 지붕과 벽을 만들어 냈다(사진 9). 나선형 계단으로 낙차를 극복한 왕상암 산정부에서 내려오는 절벽길에서도 주민들의 지혜가 엿보인다(사진 10).



사진 9. 왕상암으로 이어지는 태항천로에 놓인 환산선(위)과 절벽 위 고산지대 가옥의 모습(아래)
사진 10. 절리면을 따라 절벽길이 이어지고 있는 왕상암 경관.
퇴적경관의 진정한 가치
수많은 절경이 펼쳐진 타이항 대협곡은 한반도에서는 보기 어려운 지형이다. 한반도의 퇴적지형은 주로 석회암과 무연탄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안과 해남, 고흥 등지에 백악기 퇴적암층이 있긴 하나 타이항 대협곡처럼 거대한 퇴적지형은 볼 수 없다. 사실 타이항 대협곡은 워낙에 커서 비슷한 경관이 계속 펼쳐지는 모습에 감흥이 무뎌질 정도다. 이처럼 거대한 위용은 수억 년에 걸친 3단계의 융기와 하식작용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퇴적경관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땅의 솟구침, 지구의 거대한 힘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힘을 함께 느껴보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여행지가 어떤 암석으로 이뤄졌는지 꼭 살펴보고 가는 것이 좋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기에 여행의 가치가 배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왕 알아보는 김에 근처의 유적지도 찾아볼 것을 권한다. 타이항 대협곡이라면 은허 유적지를 찾아볼만 하다. 자연의 거대한 변화에 인간이 어떻게 적응했는지, 자연이 얼마나 장엄한지, 그리고 그런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또 얼마나 위대한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건국대 지리학과 박종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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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규모 7.8가량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어요. 수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불에 탔고, 도시의 80%가 파괴되면서 20만명이 넘는 주민이 집을 잃었어요. 인명·재산 피해가 어마어마했지만, 과학계의 오랜 숙제였던 지진의 원인에 대한 힌트가 드러나게 됐죠.
 그래픽=안병현
이 지진으로 샌프란시스코를 가로지르는 길이 약 1300㎞의 거대한 균열 '샌 안드레아스 단층'이 끊어졌거든요. 단층이란 외부의 힘을 받은 땅덩어리가 두 조각으로 끊어져 어긋난 것을 말해요. 샌 안드레아스 단층은 태평양판은 위쪽으로, 북아메리카판은 아래쪽으로 이동하면서 붙어있던 땅이 끊어진 경우였어요. 평평한 지층을 양쪽에서 거대한 힘이 밀거나 끌어당기면, 그 힘을 견딜 수 있을 때까지는 땅이 휘어지거나 얇아진답니다. 어느 정도까지는 모양이 변하는 데 그치지만, 밀거나 당기는 힘이 너무 세서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이르면 지층이 끊어져요. 땅덩어리가 쪼개지면서 크게 흔들리는 것, 이 현상이 바로 지진이에요.

지각판끼리 마찰하는 경계에서 빈번해


땅이 조각나면 흔들리는 현상이 지진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지각판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까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던 건 아니랍니다.

1912년 알프레트 베게너는 2억년쯤 전엔 하나였던 초대륙이 지금은 여러 개의 대륙으로 갈라져 이동한다는 대륙이동설을 주장했지만,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은 50여년 동안 철저히 무시당했어요. 사람들은 지구의 표면이 고정된 껍질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구가 천천히 식으면서 전체적인 크기가 줄어드는 한편, 지구를 덮고 있는 껍질이 쭈그러들면서 산과 골짜기가 생긴다는 논리지요. 땅이 끊어지면서 흔들리는 지진 현상은 지구 표면이 가끔 찢어지면 발생한다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어요. 세계 2차대전 중 미해군이 수중음파탐지기를 대서양을 비롯한 바다 밑에서 작동시켰더니, 해저 바닥 깊은 틈새가 생긴 지 오래지 않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었대요.

1960년대에는 대륙이동설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지구 표면이 여러 개의 지각판으로 이뤄져 있다는 '판구조론'이 등장해요. 지진계를 발명한 미국의 지진학자 휴고 베니오프, 일본 기상청에서 일하던 지진학자 와다치 기요는 지진 관측을 통해 지각판이 다른 판과 부딪치는 마찰로 지진이 일어난다고 주장했어요. 그리고 지구를 덮고 있는 껍질이 물렁물렁한 맨틀 위를 컨베이어벨트의 원리처럼 흐른다고 했죠. 그 뒤 깊은 바다 해구에서 산맥이 솟아오른 흔적을 통해 해저가 확장된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판구조론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어요. 대륙이동설·판구조론을 통해 지진학은 엄청나게 발전했고, 전문가들은 지진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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